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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팀 버튼의 상상력과 3D가 만났다

감독: 팀 버튼 출연: 미아 와시코스카, 자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앤 해서웨이 장르: 판타지, 어드벤처 등급: PG '가위손' '슬리피 할로우' '빅 피시' '혹성탈출' '크리스마스의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 팀 버튼 감독의 놀랍고도 괴기스러운 상상력은 그간 큰 기복 없이 영화 팬들에게 발칙한 자극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해 왔다. 그런 그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를 만든다고 했을 때 쏠리게 된 수많은 관심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신비롭고도 괴상한 캐릭터로 가득한 원작 동화와 팀 버튼의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환상의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디즈니가 제작을 맡았고 주연 배우로 자니 뎁이 확정됐다. '디즈니표' 영화란 사실은 작품의 든든한 보증서가 돼 줬고 팀 버튼과 무려 일곱번이나 함께 작업을 한 자니 뎁은 언제나 팀 버튼의 영화를 가장 빛나게 만드는 히어로였다.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또 한 가지 영화는 3D로 제작됐다. '아바타'로 불어닥친 세계적 '3D 열풍'을 팀 버튼과 그의 신작이 이어나갈 수 있을 지 온 세상의 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모아졌다. 5일 개봉과 함께 드디어 베일을 벗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분명 팀 버튼 영화 세계의 영역을 조금 더 확장시켜 주고 있다. 과장된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배경은 알록달록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배어 있는 그만의 스타일을 한껏 돋보이게 해 준다. 주인공이 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나 돌멩이와 찻잔들이 여기저기로 날아 다니는 장면 등은 마치 테마 파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듯한 아찔하고도 생생한 시각 효과를 선사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충분히 즐겁다 할 만하다. 40일 만에 끝낸 실사 촬영에 1년 넘게 후반 작업을 거친 만큼 영화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3D 체험은 재미가 넘친다. 스토리와 캐릭터 면에서도 너무도 잘 알려진 원작에 교묘한 변주를 가하는 팀 버튼의 솜씨는 빛난다. 우연히 또 한 번 이상한 나라로 빨려 들어가게 된 앨리스는 더 이상 순진하기만 한 소녀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펼쳐진 모험의 세계에 조심스레 응하기만 하는 수동적 소녀도 아니다. 다소 괴짜로 자라난 스무살 앨리스는 하얀 여왕과 모자 장수를 도와 붉은 여왕의 폭정으로부터 이상한 나라를 구해야 하는 '대의'를 짊어지고 이를 이뤄나간다. 앨리스는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약간은 유약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차고 엉뚱하며 적극적이다.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성인도 아닌 그녀가 이 괴팍한 모험을 통해 이뤄내는 또 다른 '성장'은 이 영화가 전형적 '디즈니식 가족영화' 공식에 충실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앨리스 역을 맡은 미아 와시코스카의 안정적 연기도 훌륭하지만 비현실적일 만큼 신기한 분장과 만화적 동작들로 무장한 모자 장수역의 자니 뎁 붉은 여왕 역의 헬레나 본 햄 카터 하얀 여왕 역의 앤 해서웨이 연기가 발군이다. 그들이 나와 움직이는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숙여 영화를 보게 된다. 모두가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완성해 냈단 뜻이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0-03-05

[영화 리뷰 - 식객2 : 김치전쟁] 김치를 둘러싼 요리사들의 '한판승부'

2007년 개봉돼 한국에서 300만 관객을 모았던 영화 '식객'이 돌아왔다. 이번엔 김치를 둘러싼 요리사들의 치열한 대결을 스크린에 담았다. 감독: 백동훈, 김길형 출연: 김정은, 진구, 이보희 장르: 드라마 등급: PG 개봉관: 엠팍극장 1편과 동일한 만화가 허영만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감독도 주연배우도 싹 바꿨다. 캐릭터엔 사연을 더했고 요리사들간 대결엔 보다 그럴 듯한 이유를 부여했다. 변함없는 것은 화면을 아름답게 수놓는 휘황찬란 요리들의 향연 그것뿐이다. 1편에 이어 여전히 트럭을 타고 전국을 누비며 싱싱한 재료들을 찾아 파는데 열심인 성찬(진구). 그의 앞에 어려서부터 남매처럼 함께 자랐던 장은(김정은)이 세계 최고 수준의 셰프가 돼 나타난다. 장은은 성찬이 어머니처럼 모시고 살아 온 '춘양각' 요정의 안주인 수향(이보희)의 친 딸. 하지만 '춘양각'에 대한 상처만을 간직하고 있는 장은은 이 곳을 없애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새로운 음식점을 열고자 한다. 이에 맞서는 성찬은 '춘양각'의 이름을 걸고 제1회 전국 김치대회에 출전 장은의 마음을 돌리고 위기의 '춘양각'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식객2: 김치전쟁'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김치라는 한국적 소재를 택했고 이를 둘러싼 온갖 한국적 먹거리와 전국 방방곡곡의 풍광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김치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인 '어머니'를 두 주인공의 사연 속에 녹여 감수성을 한껏 자극하는 방식도 매우 한국적이다. 어머니가 만든 마지막 김치를 먹지도 못하고 아끼고 아껴 뒀던 아픈 기억 탓에 주인공의 요리에는 묘한 쓴 맛이 가시질 않는다는 설정은 퍽 찡하면서도 낭만적이라 관객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다만 '어머니'가 주는 감동 코드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요리 영화로서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신파'로 흐를 위험을 잠깐씩 보였다는 점은 아쉽다. 음식 그 자체를 둘러싸고 벌이는 요리사들의 치열한 고민과 자존심 싸움은 오히려 뒷전이 된 경향도 비친다. 그래도 영상으로는 요리 영화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요리사들의 시원시원한 칼질과 거침없는 무침 솜씨 접시 위에 음식을 올리는 정교한 데코레이션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음식의 맛깔난 색감과 질감도 아주 잘 담아냈다. 화면에 비친 김치 한 포기 비빔국수 한 그릇에도 저절로 군침이 돌 정도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daily.com

2010-02-19

[영화 리뷰 - 밸런타인스 데이(Valentine's Day)] 밸런타인스 판 '러브 액추얼리'

감독 : 게리 마샬 출연 : 제시카 알바, 줄리아 로버츠, 애쉬튼 커처 장르 : 로맨틱 코미디 등급 : PG-13 모름지기 밸런타인스데이는 로맨틱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과 행복만이 가득차고 넘쳐야 하는 날이 밸런타인스데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경험하는 사랑의 과정과 모습이 각각이듯 밸런타인스 데이의 풍경도 가지각색일 수밖엔 없다. 아이도 어른도 학생도 선생님도 스포츠 선수도 군인도 누구에게나 밸런타인스데이는 찾아온다. 누군가에겐 오랜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고 또 누군가에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날이지만 다른 이에겐 프로포즈를 거절당하는 날이거나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을 당하는 날이기도 하다. '밸런타인스데이'(Valentine's Day)는 이처럼 밸런타인스데이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담고 있는 모자이크와 같은 영화다. LA인근을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속에는 수 많은 커플들이 밸런타인스데이에 경험하게 되는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하게 담겨있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영국 영화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의 미국판 밸런타인스데이 버전쯤으로 생각하면 크게 어긋남이 없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가진 재미와 깊이 이야기간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탄탄한 구성은 '러브 액추얼리'보단 크게 못 미친다. 그래도 영화는 보는 이 모두를 시종일관 미소 짓게 한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건 사랑과 행복을 꿈꾸는 이들이 뿜어내는 햇살 같은 따스함이 전반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연출한 게리 마샬은 '귀여운 여인' '프린세스 다이어리' '런어웨이 브라이드' 등으로 로맨틱 코미디엔 도가 튼 감독이다. 게다가 세대별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초호화 캐스팅이다. 제시카 알바 제시카 비엘 줄리아 로버츠 제니퍼 가너 앤 해서웨이 애쉬튼 커처 브래들리 쿠퍼 제이미 폭스 등 최고 주가를 올리는 배우들은 물론 틴에이저들의 우상 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로트너에다 전설적인 은막의 스타 셜리 맥클레인까지 영화를 빛낸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0-02-12

[영화 리뷰 - 울프맨(The Wolfman)] 구닥다리식 리메이크 '늑대인간'

감독: 조 존스톤 출연: 베니치오 델 토로, 앤서니 홉킨스 등 장르: 공포, 스릴러 등급: R 늑대인간이 돌아왔다. 할리우드 괴수공포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였던 '울프맨'(1941)이 70여년 만에 리메이크된 버전이다. 오랜 세월 고향을 떠나 유명 극단의 배우로 활동하던 로렌스(베네치오 델 토로)는 동생이 괴수의 습격으로 살해됐다는 소식에 아버지(앤서니 홉킨스)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동생의 죽음을 조사하던 중 그 역시 괴수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는다. 부상이 회복되며 몸이 조금씩 변화된다는 것을 느끼던 로렌스는 자신이 보름달만 뜨면 이성을 잃고 온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하는 늑대인간이 되어 가고 있단 것을 알게 된다. '울프맨'에 대한 기대는 원작이 당대에 선보였던 충격적 특수효과와 잔인한 영상을 첨단현대기술로 얼마나 새롭게 포장하느냐에 쏠려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원작에 너무나도 충실한 나머지 답습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리메이크판은 스토리와 카메라앵글 뿐 아니라 주인공 로렌스가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의 시각적 효과까지 구닥다리식으로 처리했다. 주인공의 옷이 갑자기 찢어지며 손과 발에서 털과 발톱이 돋아나고 눈동자가 노래지는 장면은 2010년 오늘의 영화팬들을 사로잡기엔 역부족이다. 괴수로 변해버리는 인간의 심적 고뇌는 온데 간데없고 보름달만 봤다 하면 사방팔방 날뛰며 내던지고 물어뜯기 바쁜 늑대인간 캐릭터 역시 너무나 평이하다. 지붕 위에 올라 '아우~' 하고 울부짖는 늑대인간의 모습에선 공포감은 커녕 '풉' 하는 웃음이 터지고 만다. 아쉽게도 '울프맨'은 21세기 괴수물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는 그저 그런 영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0-02-12

[영화 리뷰 - 리전(Legion)] 창조주에 버림받은 인간을 구하는 대천사

타락한 세상에 창조주의 심판이 다가온다. 과거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쓸어 버렸던 창조주는 이제 천사들을 시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 감독 : 스콧 스튜어트 출연 : 폴 베타니, 애드라언 팰릭, 데니스 퀘이드 장르 : 판타지, 호러 등급 : R 거기에 대천사 미카엘(폴 베타니)이 맞선다. 아직도 인간에게 희망이 남아 있음을 본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와 날개를 찢어 버린 미카엘은 인류의 유일한 구원이 될 아기를 사막 작은 식당의 웨이트리스 찰리(애드리언 팰릭키)가 잉태하고 있음을 알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멸망의 그림자는 찰리와 뱃속 아기를 없애기 위해 사막을 뒤덮고 창조주가 보낸 심판의 군대로부터 그녀를 구하기 위한 미카엘과 식당 안 7명 사람들의 처절한 싸움은 시작된다. 묵시록적 설정에서 시작된 영화 '리전'은 초반 서늘한 긴장감과 함께 신과 인간 멸망과 구원 파괴와 재림 등의 철학적 가치가 숨겨져 있을 듯한 환상을 준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잠깐뿐. 영화는 곧 B급 호러영화 정도로 몰락해 버린다. 찰리와 아기를 없애기 위해 몰려드는 심판의 천사들은 딱 좀비떼 수준이다. 아무리 최후의 심판과 멸망의 때라지만 악령이 빙의된 것처럼 눈을 희번득거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군대' 라며 쏘고 찌르고 물어 뜯고 불태우는 모습은 판타지임을 감안하고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신에 맞선 대천사' 미카엘 외에는 식당 안에 모여 든 사람들이 찰리를 보호하고 서로를 지키려는 이유도 전혀 찾기 힘들다. 당연히 캐릭터에 대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첫 장편 데뷔인 스콧 스튜어트 감독의 빈약한 상상력은 안쓰러울 지경이다.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전투신은 그렇다 쳐도 천사나 천국에 대한 묘사는 실소가 나올 만큼 평이하다. 세상을 창조하고 멸망시키는 신의 군대가 총포 앞에 줄줄 쓰러지는 모습도 한심한데 대천사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며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바타'로 한껏 높아진 관객들의 수준을 맞추기엔 시각 효과마저 허접스럽기 이를 데 없다. 스튜어트 감독은 차기작으로 한국 만화가 형민우 작가의 작품 '프리스트'를 영화화하고 있다. 부디 괴기스러우면서도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원작의 재미를 반감시키지만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0-01-29

[영화 리뷰 - 스파이 넥스트 도어(The Spy Next Door)] 은퇴한 CIA 요원 '베이비시터' 되다

할 일 없이 소파에 길게 누워 리모콘질을 하며 '뭐 이리 볼 게 없어' 투덜대다가 성룡표 영화에 채널을 고정시켜 본 적이 있는가. 감독: 브라이언 레반트 출연: 성룡, 앰버 밸러타, 매들린 캐롤 장르: 액션, 코미디 등급: PG 매번 답습되는 액션과 코미디 패턴이지만 '적어도 지루할 틈은 안 주니까'하며 '취권'이나 '턱시도'같은 영화를 보고 심지어는 두 세 번은 봤던 '러시아워' 시리즈를 또 보고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성룡의 새 영화 '스파이 넥스트 도어'(The Spy Next Door)도 마찬가지다.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그의 전형적 스타일 그대로다. 막 은퇴한 전 CIA 요원 빌 호(성룡)는 옆 집에 살며 세 남매를 키우는 질리언(앰버 밸러타)과 평범하고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그녀의 말썽꾸러기 세 아이는 막무가내로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한다. 그러던 어느날 질리언은 급한 일로 빌에게 아이들을 며칠간 맡기게 되고 스파이 잡기보다 어려운 빌의 베이비 시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와중에 임무 수행 과정에서 접속하게 된 러시아 스파이들의 비밀 파일을 아이들이 다운로드 받게 되면서 이들은 크나큰 위험에 노출되기까지 한다. 성룡의 액션은 아이들을 보호해 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펼쳐진다. 집 밖에선 CIA 출신답게 언제 어디서든 첨단 무기로 변하는 벨트 반지 시계로 무장해 활약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 안에서조차 냉장고 문짝에 프라이팬 세제통까지 들고 날아다니며 일당백으로 적들을 쳐부순다. 영화의 타겟은 확실하다. 부모 손 잡고 극장에 따라올 아이들이다. 가족의 화해와 사랑이라는 코드가 녹아 있는데다 어설픈 성적유머나 과격한 대사도 모두 뺀 덕에 디즈니 채널에서 방송돼도 무난할 정도다. 언제나 그렇듯 성룡의 액션은 지루하지 않다. 그래도 힘은 좀 빠졌다. 예전만큼 화려하진 않다. 성룡도 나이는 들어가나 보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0-01-22

[영화 리뷰 - 북 오브 일라이(The Book of Eli)] 낯설다, 불친절하다, 강렬하다

참으로 묘한 영화다. 알 수 없는 시공간 배경 뚜렷한 동기를 파악하기 힘드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캐릭터들 잿빛 톤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헤비메탈 밴드의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까지. 낯설다. 불친절하다. 하지만 신기하게 피로하진 않다. 몰입도 된다. 그리고 매우 강렬하다. 감독: 알버트 휴즈, 알렌 휴즈 출연: 덴젤 워싱턴, 게리 올드만, 밀라 쿠니스 장르: 액션, 드라마 등급: R '북 오브 일라이'(The Book of Eli)는 '사회에의 위협' 등의 영화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빼어난 솜씨로 주목받아 온 쌍둥이 형제 감독 알버트 휴즈와 알렌 휴즈의 첫 메이저 상업 영화다. 거물급 프로듀서 조엘 실버와 주연을 맡은 덴젤 워싱턴이 공동 제작을 맡았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세계는 하늘에서 섬광이 번뜩였던 재앙의 날 이후 황폐화됐다. 충분한 음식도 물도 없고 법과 질서 따윈 찾아볼 수 없이 수십년이 흘렀다. 그 가운데 30여년의 세월을 외로이 서쪽으로 향해 걷는 일라이(덴젤 워싱턴)가 있다. 그는 미래의 희망이 될 절대 가치가 담긴 한 권의 책을 수호하기 위해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자신의 운명이자 소명일 뿐이다. 약탈자들이 득실대는 한 마을의 지배자 카네기(게리 올드만)가 그 책을 손에 넣고자 하는 데도 복잡한 이유는 없다. 그저 그 책이 갖는 '파워'를 알고 있을 뿐이다. 책 한 권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추격과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고 격하게 이어진다. 책의 정체는 영화의 꽤나 초반부에 드러난다. 성경이다. 숨겨진 아무런 비밀장치도 없다. 물리적 기적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딱히 당장 달라질 것도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허무하다면 허무한 실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둘러싼 두 주인공의 처절한 싸움은 대단한 긴장감을 준다. 설득력은 없지만 미치도록 간절하기 때문이다. 시작이 모호한 만큼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이 불가능해 오히려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액션신들이 주는 시청각적 자극은 강도가 매우 세다. 전체적 영상도 대작 게임의 그래픽을 연상하게 만들 만큼 스케일이 크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0-01-15

[영화 리뷰 - 리프 이어(Leap Year)] 2박 3일이 가른 그녀의 선택

평생을 보스턴에서 살아온 애나(에이미 아담스)는 안정된 직업과 멋진 의사 남자친구까지 남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감독: 아넌드 터커 출연: 에이미 아담스, 매튜 구드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등급: PG 4주년 기념일에 애인 제레미(애덤 스캇)의 청혼을 받아 근사한 아파트에 입주하길 꿈꾸던 그녀. 하지만 학수고대하던 4주년 기념일은 깜짝 프로포즈 없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리다. 실망한 애나는 자신이 직접 남자친구에게 청혼하기로 결심한다. 부모님의 고향인 아일랜드엔 윤년(리프 이어) 2월 29일마다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청혼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학회에 참석하는 애인을 따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향한 애나.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악천후에 항공편은 줄줄이 취소되고 가까스로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 도착했으나 더블린까지 갈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하는 수 없이 동네 술집을 운영하는 껄렁껄렁한 남자 데클랜(매튜 구드)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서로 상극인 두 사람은 가는 길 내내 아웅다웅하기 바쁘다. 게다가 그칠 줄 모르고 터지는 악재에 4시간이면 갈 더블린까지의 여정은 꼬박 2박 3일을 넘기고 만다. 그런데… 이 험난하기만 한 여행길에서 앙숙이던 애나와 데클랜 사이엔 조금씩 알 수 없는 감정이 싹트게 된다. '리프 이어'(Leap Year)는 매우 '아이리시'(Irish)한 영화다. 아일랜드의 재미난 전통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 전반에 걸쳐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득 담아낸다. 잿빛 하늘과 푸른 들판이 묘한 조화를 이룬 배경 덕에 결과가 뻔한 로맨스도 초록빛으로 보인다. 고급 향수같은 트렌디함을 걸러내는 대신 약간의 거름냄새가 밴 풀내음같은 소박함을 담았다. 화끈하고 정의로우면서도 투박한 아일랜드 민족들의 정서는 영화 '리프 이어'가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돼 거칠지만 편안히 다가온다. 고작 2박 3일 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조금은 무리한 설정도 '아일랜드에서라면 그럴 수 있어'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해 주는 마력이 '리프 이어'에는 짙게 스며있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0-01-08

[영화 리뷰 - 백야행] 14년 세월, 살인으로 맺어진 인연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백야행' 은 많은 영화관계자 사이에 영화로 만들고 싶지만 영화화할 엄두를 내기엔 쉽지 않은 소설로 꼽혀왔다. 760여 쪽이나 되는 녹록하지 않은 분량 14년의 세월을 왔다 갔다 하는 복잡한 구조 살인으로 맺어진 남녀 주인공의 충격적인 인연과 결말 때문이다. 드라마로 이미 히트한 것도 부담스런 요인이었다. 감독: 박신우 주연: 한석규, 손예진, 고수 장르: 스릴러, 범죄, 드라마 등급: R 박신우 감독의 데뷔작 '백야행'은 이 모든 압박에도 자신만의 색채를 뚜렷이 갖고 있는 영화다. 재벌총수의 여비서 시영(이민정)처럼 중간에 길을 잃은 듯한 캐릭터도 있긴 하지만 간단치 않은 내용을 135분에 압축해 넣은 야무진 매무새는 박수받을 만하다. 한없이 어둡고 가라앉은 그러나 휘몰아치는 격렬한 감정선을 후반부까지 최대한 몰고 가는 것도 강점이다. 이를 놓고 단지 '원작의 힘'이라고 얘기해버린다면 미안한 일이다.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중 '정경'을 매개로 한 강렬한 교차편집 흑백의 대조를 내세운 섬세한 비주얼과 음악도 완성도를 높였다. 한동수 형사 역의 한석규 미호 역의 손예진 요한 역의 고수가 각자 '생애 최고 연기'를 보여줬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누구 하나 다른 배우였다면 하는 상상이 힘들 정도로 딱 떨어지는 캐스팅인 점만은 분명하다.

2009-12-31

[영화 리뷰 - 시크릿] '한국식 스릴러' 새로운 장 열린다

감독: 윤재구 주연: 차승원, 송윤아, 류승룡 장르: 스릴러 등급: R 강력계 형사 성열(차승원)은 아내의 친구와 잠자리를 갖고 딸을 태워 돌아오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아픈 비밀을 갖고 있다. 사고 이후 냉랭해진 아내 지연(송윤아)은 어느 날 말쑥히 차려입은 채로 외출했다 피 범벅이 돼 돌아온다. 때 마침 조직폭력배들의 우두머리 자칼(류승룡)의 동생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을 찾은 성열은 그 곳에서 아내 지연의 귀걸이와 단추 그리고 그녀의 립스틱이 묻은 유리잔 등을 발견하며 충격에 빠진다. 성열은 아내를 다그치지만 지연은 뭔가 숨기기만 한 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사건에 연루시키지 않기 위해 목격자를 빼돌리고 증거를 인멸시키려는 성열. 하지만 그럴수록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두 사람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전작 '세븐 데이즈'를 통해 유독 성장이 더뎠던 한국식 스릴러 영화 장르에 새 힘을 불어넣었던 윤재구 감독은 '시크릿'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솜씨를 발휘했다. 쓸데없이 긴 발단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채 영화 초반부터 갈등을 던지고 시작 2시간 내내 극을 긴장과 서스펜스로 힘 있게 몰고 간다. 중간 중간 툭툭 던져 놓은 단서와 복선들을 후반부에 빠르게 주워 담아 처리하는 리듬감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연출력의 힘이다. 막판 반전에 반전을 순식간에 거듭하는 방식도 세련됐다. 진지하면서도 혼란에 빠져 허덕이는 엘리트 강력계 형사 성열의 캐릭터는 차승원의 빼어난 연기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한다. 그에 비해 송윤아의 밋밋한 연기는 영화의 모든 비밀과 키를 쥐고 있는 지연에게 리얼리티를 부여하기엔 역부족이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12-31

[영화 리뷰 -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 그 이혼녀는 어떤 사랑을 선택할까

참 복잡하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 20여년을 잘 살다가도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으면 하루아침에 이혼이다. 감독: 낸시 메이어스 주연: 메릴 스트립, 스티브 마틴, 알렉 볼드윈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등급: R 그 아픔을 극복하려 10여년을 애인 하나 없이 죽어라 살림에 사업에 애들까지 잘 키워내자 전 남편이 치근덕댄다. 새파랗게 어린 여자랑 결혼해 잘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심지어는 "당신과 다시 사랑에 빠진 것 같다"며 사탕발림 말을 해대고 저돌적 '육탄 공세'까지 펼친다. 머리로는 '미친 짓'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아 보지만 수십년을 살 섞고 살았던 '익숙함'에 나도 모르게 사고를 쳤다. 이건 하룻밤 불장난도 아니고 불륜도 아니고 복수도 아니고 도대체 뭐란 말인가. 복잡해도 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다. 작가 겸 감독으로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사랑할 때 버려야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 등의 전작에서 여성들의 마음을 빼어나게 읽어왔던 낸시 메이어스는 신작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를 통해 또 한번 그 섬세한 촉수와 재치로 남녀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읽어낸다. 새 장가 든 전 남편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세 남매를 잘 키워낸 제인(메릴 스트립)은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러 뉴욕에 갔다 전 남편 제이크(알렉 볼드윈)와 잠자리를 갖고 만다. 하필이면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건축가 애덤(스티브 마틴)과의 로맨스가 막 시작되려던 찰나의 일이다. 둘의 미묘한 관계는 두 번 세 번 그 횟수를 더하게 되고 그럴수록 제인은 자신의 감정과 지나온 과거와 세 자녀의 시선 등으로 고민에 빠져든다. 영화에는 아무리 이혼을 했어도 깨끗하게 남남일 수 없는 한 때 부부였던 두 사람의 소소한 욕망과 감정들이 잘 그려져 있다. 한 이불을 덮고도 쉴 새 없이 동상이몽을 꾸는 남녀의 차이 미묘하게 얽혀 있는 애증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보는 이에게 쉴 새 없이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면서도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R등급이지만 보기 불편할 만큼 야하지 않다. 어설픈 B급 화장실 유머도 없다. 대신 중년의 이혼남녀들에 대한 따뜻하고도 깊은 이해가 있다. 깊이 패인 주름까지 사랑스러운 스트립과 불뚝 나온 배를 출렁이며 늑대의 눈빛을 번뜩이는 볼드윈 그리고 '로맨스 그레이'에 너무도 어울리는 남자 마틴은 완벽한 삼각편대로 이 영화를 더욱 재밌고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12-25

[영화 리뷰 -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주먹을 더 잘쓰는' 셜록 홈즈

지금까지의 셜록 홈즈는 잊어라. 코난 도일의 원작에 나오는 명석하고 냉철하면서도 무심한듯한 매력의 명탐정은 온 데 간 데 없다. 감독: 가이 리치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장르: 액션, 어드벤처 등급: PG-13 가이 리치 감독이 만들어낸 셜록 홈즈는 차라리 '난봉꾼'이다. 일단 지저분하다. 말쑥한 정장은 커녕 꼬질꼬질하게 검댕칠을 하고 다닌다. 돋보기와 수첩 대신 연장 세트를 들고 다니며 아무 곳이나 깨고 부수고 쑤시고 다닌다. 아예 웃통을 벗고 사각링에 들어가 내기 격투까지 한다. 경기 후 술 한 병을 아무렇게나 집어들고 병째 들이키는 것은 예사다. 명색이 탐정인데 범인을 잡아 감옥에 넣는 게 아니라 사고 치고 다니느라 본인이 감옥에 갇히는 일이 더 잦다. 명탐정보다는 괴짜 과학자에 가깝고 머리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인물 바로 영화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의 주인공이다. 1890년대 런던을 주름잡던 명콤비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왓슨 박사(주드 로)는 주술적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의 세력 '블랙우드'와 맞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한데 이 과정 역시 관객과 함께 머리를 굴려가며 치밀한 두뇌 싸움으로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총과 칼과 몸싸움으로 밀고 나간다. 덕분에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배경도 근사하고 액션도 화려하다. 두 근사한 남자 배우들의 폼 재는 듯한 연기도 유쾌하다. 가이 리치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비주얼은 참으로 '쌈박'하다. 추리물이 원작인 덕에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다만 영화 속 홈즈의 추리는 치밀한 데이터 분석과 관찰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동물적 감각에 의존한다. 머리를 굴려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귀납법이 아니라 일단 범인을 때려 잡아 놓고 '사실은 이랬던 것'이라는 우격다짐의 연역법이다. 때문에 '유주얼 서스펙트'(Usual Suspect)식의 차가운 긴장감을 기대한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해결해야 하는 사건 자체도 지능적 범죄보단 사악한 흑마술에 가깝다 보니 이성의 힘에 호소하는 부분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대신 한국식 형사 영화 '투캅스' 공공의 적' 시리즈 등이 주는 재미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딱 맞는다. 영화로만 보면 홈즈는 영국 탐정이 아닌 한국 형사같이 느껴질 만큼 친근하다. 주먹이 앞서야 정의로운 것 아닌가. '셜록 홈즈'는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브래드 피트가 잠정적으로 속편의 악역에 캐스팅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기대된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12-25

[영화 리뷰 -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 웬수같은 남편과 24시간 함께 해야한다

뉴욕의 잘나가는 부동산 중개인 메릴 모건(새라 제시카 파커)과 변호사 폴 모건(휴 그랜트)은 별거 중이다. 감독: 마크 로렌스 주연: 새라 제시카 파커, 휴 그랜트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등급: PG-13 폴이 혼외정사를 가졌기 때문. 폴은 어떻게든 부부 사이를 회복해 보고자 하지만 메릴의 마음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오랜만에 함께 한 저녁식사가 다시 거리 위의 다툼으로 번지는 순간 두 사람은 불행하게도 무시무시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하필이면 사건의 범인인 청부살인업자와도 눈을 마주치게 된 두 사람.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범인은 모건 부부마저 살해하려 뒤를 쫓게 되고 경찰은 두 사람의 안전을 위해 모건부부를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단절된 '안전한 지역'으로 보낸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와이오밍주의 작은 마을. 화려한 뉴욕 생활에 익숙한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사냥을 하며 장작을 패야 하는 생활 그것도 별거 중인 상대방과 함께 24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만다.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Did you hear about the Morgans?)는 초반 스토리만 대충 들어도 이야기의 전개가 불 보듯 뻔한 영화다. 갈등을 겪고 있던 부부는 색다른 환경에서 예기치 않은 시련을 겪 으며 화해하고 돈독해지고 그래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전형적인 연말형 크리스마스 시즌 로맨틱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것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별 고민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예쁜 남녀 둘이 칼로 물 베기 사랑 싸움하는 것을 엿보며 피식피식 웃다 보면 1시간 40분이 훌쩍 지나 있다. 그것도 파커와 그랜트라면 그 행복감은 더 하다. 얼굴엔 주름이 깊이 패이고 자글자글한 손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순 없지만 두 사람의 코믹하고도 사랑스러운 연기는 언제 봐도 흐뭇하다. "나는 뉴요커야"를 부르짖는 파커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캐리와 끊임없이 오버랩되지만 그러면 어떠랴. 움직이는 것만 봐도 흐뭇한 것을.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이자 전부인 것을.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12-18

[영화 리뷰 - 아바타] '타이타닉' 감독이 12년 만에 내놓은 역작

가까운 미래 지구에는 에너지원이 고갈되고 인간은 지구에서 4.4 광년 떨어진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한다. 독성을 가진 판도라의 대기 때문에 인간은 판도라의 토착민인 나비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해 원격 조종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낸다.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샘 워딩튼)는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해 나비 족에 침투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나비 족장의 딸인 네이티리(조 샐다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판도라를 지키려는 나비족의 일원이 되어 간다. 영화 '아바타'는 10년이 넘도록 전 세계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켜온 '타이타닉'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2년 만에 내놓은 역작이다. 영화는 거대한 자본과 결합한 할리우드 최첨단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행성 판도라와 생명체를 3D로 구현해 내는 데 들인 돈은 공식적으로 2억4000만 달러이지만 미국에서는 5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배우들이 머리에 초소형 카메라를 달고 연기하는 '이모션 캡처' 방식은 얼굴 전체를 실시간으로 캡처해 미세한 표정까지 표현해 낸다. 아마존 밀림을 거대하게 확장시켜 놓은 듯한 판도라는 밤이 되면 식물들이 빛을 발하고 익룡이나 표범을 닮은 각종 생명체가 펄떡이며 파란 피부 큰 키에 꼬리가 달렸지만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나비족은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 작업을 위해 거대한 세트장인 '볼륨'에 설치됐던 카메라는 250대 판도라의 자연을 구현해 낸 컴퓨터 그래픽 용량은 1페타바이트로 '타이타닉' 침몰 장면 용량인 2테라바이트의 500배에 이른다. 하지만 시각적 충격의 효과는 영화의 러닝 타임보다 유효 기간이 짧은 듯싶다. 초반부터 시각적 자극을 너무 높여 놨기에 2시간 40분이 넘는 긴 시간 내내 흥분 상태를 유지하며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관객의 눈을 끝까지 잡아 붙들어 놓으려면 말초적인 시각 효과보다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 없는 상상력과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구조 때문에 시각적 충격에서 일단 벗어나면 남은 시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수도 있다.

2009-12-18

[영화 리뷰 - 청담보살] 재미도…감동도…새로울 것도 없었다

참으로 참담한 영화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새로울 것도 없는 주제에 안정된 맛도 없다. 감독: 김진영 주연: 박예진, 임창정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등급: PG-13 상영관: 엠팍극장 차라리 지독히 통속적이더라도 귀여운 맛이 있는 로맨틱 코미디만으로 승부를 보던지 그나마도 자신 없으면 더 강도 높은 섹스 코미디로 가던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장르 설정에 2시간 내내 실소밖에 나지 않는다. 박예진 임창정 두 스타를 내세운 '청담보살'은 지난달 한국에서 개봉 지금까지 약 1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영화다.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팝콘무비'가 기근이었던 한국 영화계에 간만에 등장해서인지 완성도에 비해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영화의 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무속인이었던 어머니로부터 능력을 이어받은 20대 젊은 보살 태랑(박예진). 아름다운 외모에 용하기로 소문난 실력 강남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사주 카페를 운영하며 억대 수익을 올릴 만큼 탄탄한 재력을 가진 퀸카 중 퀸카다. 하지만 28세 생일을 맞기 전 하늘이 점지해준 시간에 태어난 남자를 만나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가혹한 운명'에 괴롭기만 하다. 하필이면 그 운명의 상대로 나타난 인물이 경주마 오줌이나 받는 무능력남 승원(임창정)이라니 통탄할 노릇이다. 그래도 운명에 순응해 보기로 결심한 태랑은 승원과의 아슬아슬한 데이트를 시작한다. 재미있으려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풀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다. 잘만 했다면 오래도록 관객들 뇌리에 남을 재미난 캐릭터도 빚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예진이 연기하는 청담보살은 보살역을 맡은 배우가 얼핏이라도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광기나 카리스마조차 없다. 오죽하면 영화 촬영이 아니라 화보 촬영이라 착각을 했지 싶다. 쉴새없이 공주풍 옷을 갈아 입고 샤넬 백을 바꿔 들며 푸조 컨버터블이나 운전하면서 맹한 표정으로 코맹맹이 소리를 해댄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이었던 '패밀리가 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최근 조금이나마 익숙해졌기 망정이지 그나마도 아니었다면 제대로 '비호감'이다. 대한민국에서 따를 자가 없는 '찌질이' 연기의 일인자 임창정은 그나마 선방했다. 같은 대사라도 허를 찌르는 절묘한 타이밍과 애드립으로 감칠맛을 살려내는 능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젠 좀 지겹다. '색즉시공'에서 조금도 발전된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연기 앙상블에 로맨틱한 구석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다. 때문에 태랑과 승원 사이 사랑의 감정이 깊어지는 과정은 도저히 이해불가다. 결과적으로 영화 자체를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 부르기조차 미안할 지경이 됐다. 이경민 기자

2009-12-11

[영화 리뷰 - 인빅터스(Invictus)] "정복당하지 않는 내 영혼을 위해"

세상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곧잘 일어난다. 9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그랬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모건 프리먼, 맷 데이먼 장르: 드라마 등급: PG-13 1990년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다 27년간의 지옥 같던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넬슨 만델라는 94년 62%의 지지를 받으며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흑백 간의 뿌리깊은 갈등은 그가 넘어야 할 높고도 견고한 장벽이었다. 모두가 화합해 평화를 누리는 '레인보우 네이션'(Rainbow nation)을 꿈꿨던 만델라는 95년 남아공에서 개최된 럭비 월드컵을 통합의 계기로 삼기로 한다. 만델라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 아래 약체였던 남아공 럭비 대표팀은 성장을 거듭해 가고 백인들의 스포츠라며 럭비를 멀리했던 흑인들의 마음도 럭비 구장 안에서 점차 하나로 모아진다. '인빅터스'(Invictus)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모건 프리먼 맷 데이먼 등 '믿을 만한' 이름들이 제 몫을 해 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팀 스포츠의 집단적 광기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경기 장면을 통한 뜨겁고 감동적인 승리의 환희와 뭉클함을 전해준다. 그러면서도 만델라 대통령(모건 프리먼)의 정치적 목표 달성과 국가대표팀 주장 프랜시스(맷 데이먼)의 우승이라는 성취의 과정을 묵묵히 담아내는 전기 영화적인 요소도 놓치지 않다. 대통령과 국가대표팀 주장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힘이 되어주는 '교감'의 장면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가 언제나 지녀왔던 미덕의 연장이다. 모건 프리먼은 완벽히 만델라가 됐다. 투박한 악센트와 질척이는 걸음걸이로 곧고 강하지만 한편으론 여리디여린 만델라 대통령을 멋지게 그려냈다. 맷 데이먼도 호연했다. 살갗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는 듯한 럭비 경기 장면의 박진감은 그의 공이 크다. 영화의 제목인 '인빅터스'는 라틴어 형용사로 '정복되지 않은'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어린 나이에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영국의 시인 윌리암 E. 헨리의 싯구이기도 하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 온통 칠흑같은 암흑 / 정복당하지 않는 나의 영혼을 위해 / 내게 임하는 모든 신들께 감사한다…내 운명의 지배자 / 내 영혼의 선장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구절은 영화 '인빅터스'의 주제를 잘 드러낸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12-11

[영화 리뷰 - 굿모닝 프레지던트] 이런 대통령 어떠세요 '발칙한 상상'

일생을 민주화 투쟁에 몸 바친 김정호 대통령(이순재). 퇴임을 앞두고 로또 1등에 당첨되자 '기부할 것이냐 꿀꺽 먹을 것이냐'를 두고 속앓이를 한다. 감독: 장진 주연: 장동건, 고두심, 이순재 장르: 코미디, 드라마 등급: PG-13 상영관: 엠팍극장 강경한 외교 정책을 밀어붙이던 차지욱 대통령(장동건)은 괴청년의 무리한 요구에 고민을 거듭하고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한경자 대통령(고두심)은 청와대에 적응 못 하는 남편 때문에 사상 초유의 위기에 맞닥뜨린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에는 세 명의 대통령이 있다. 워낙 각양각색 매력이 철철 넘치는지라 '세상에 이런 대통령이 가능하기나 해?' 하고 의심하게 되지만 영화 시작과 동시에 의심은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버린다. 장진 감독의 발칙한 상상으로 완성된 세 명의 대통령은 행복한 상상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선택하면서 지극히 정치적 상황의 중심에 서게5 됐지만 결코 정치적이지 않은 아이러니가 유쾌하다. 청와대란 구중궁궐에 살아가는 대통령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 기부의 문턱에서 고민하는 김정호 대통령 강경한 외교 정치로 카리스마를 자랑하지만 첫사랑 앞에선 마냥 소심해지는 차지욱 대통령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헌정 사상 초유의 이혼 사태에 직면한 한경자 대통령. 저마다 다른 정치 스타일로 국가를 꾸려가는 세 명의 대통령은 제각각 '공'적인 고민과 '사'적인 고민에 함께 직면한다. 쉼없이 고민하고 끝없이 갈등에 부딪히는 그들은 결국 소신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가슴이 따뜻해지는 세 대통령의 선택이야말로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보여주고 싶은 행복한 웃음의 본질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웃음에 대한 통찰력을 익히 발휘해왔던 장진 감독의 능숙함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대통령들의 모습에 '아 저들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구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는 장르의 공식을 정직하게 따르되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비법을 가미했다. 대통령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대통령의 삶을 고증하거나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대해선 조금의 강박도 없다. 그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대통령에게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장진 감독은 장동건의 숨겨진 코미디 본능을 일깨워주고 '장진라인'의 막강 코미디 양념으로 대통령의 인간미를 더욱 배가했다. 대통령을 향한 유쾌한 상상이 웃음으로 실현된 착한 영화가 등장했다.

2009-11-27

[영화 리뷰 - 플래닛 51] 외계인 세상에서 외계인이 된 인간

감독 : 호르헤 블랑코 출연 : 드웨인 존슨, 제시칸 비얼, 개리 올드먼 장르: 애니메이션, 가족 등급: PG 외계 생명체를 찾아 은하계를 누비던 우주 비행사가 어느 별엔가 불시착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인간인 우주 비행사는 졸지에 그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에게 기피 대상 포획 대상 연구 대상인 '외계인'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플래닛 51'(Planet 51)은 이 같은 상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잘 생긴 우주 비행사 찰스는 우주 비행 임무 수행 중 불시착하게 된 행성에서 지구와 너무나 흡사한 환경 인간과 너무나 똑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초록빛 피부의 외계인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에겐 찰스가 외계인일 뿐. 느닷없이 하늘에 떨어진 불청객으로 온 동네는 난리가 나고 그를 잡기 위해 군 병력이 총 동원되는 등 51번 행성은 엉망진창이 된다. 지구로 돌아갈 우주선마저 빼앗긴 채 쫓기는 신세가 된 찰스. 하지만 열린 마음과 고운 심성을 갖고 있는 친구들인 렘 니라 스키프 덕분에 찰스는 무사히 외계인들과의 오해를 풀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더할 나위 없이 교육적이면서도 훈훈한 스토리다. 또한 '플래닛 51'에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계인들의 삶이 아기자기하게 묘사돼 즐거움을 준다. 특히 70년대 미국의 문화를 보는 듯한 배경에선 재치 만점의 설정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주 저 먼 곳 어딘가 비슷한 생활 방식과 동일한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친근한 생명체들이 있을 것이란 상상에 지극히 유쾌해지기도 한다. 'ET' '아마겟돈'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 등의 영화를 패러디한 장면들도 폭소를 자아낸다. 이경민 기자

2009-11-19

[영화 리뷰 - 닌자 어새신] 살인병기로 다시 태어난 월드스타 '비'

감독 : 제임스 맥티그 출연 : 비(정지훈), 나오미 해리스, 쇼 코스기, 릭 윤 장르: 액션, 스릴러 등급: R 비가 '괴물'이 됐다. 피칠갑을 한 채 날 선 검과 표창과 쇠사슬을 휘두르는 모습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댄디하고 섹시한 매력남 비는 없다. 징글징글하도록 이글대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이를 악 문 낯선 비 뿐이다. 마치 '높고도 견고한 할리우드이라는 성을 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온몸을 던져야 했다'고 절규하는 것만 같다. 오는 25일 전세계에서 동시에 개봉되는 영화 '닌자 어새신(Ninja Assassin)'은 우리가 입버릇처럼 '월드스타'라 불러왔던 비가 진정 '월드스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할 첫 주연작이다. 비가 맡은 역은 라이조. 닌자를 키워내는 비밀 조직 '오주누파'에서 살인 병기로 키워진 라이조는 첫 사랑이 조직에 의해 무참하게 처단되자 오주누파를 떠나 복수극을 벌인다. '닌자 어새신'의 단독 주인공을 맡은 비의 무술 연기는 눈물 겨울 정도로 처절하다. 그는 진정 몸을 아끼지 않았다. 좀 더 멋있게 근사하게 화면에 나오고자 하는 욕구마저 버린 듯 보는 이의 눈을 찌푸릴 만큼 잔혹한 모습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빚어낸 조각 같은 몸으로 대역 없이 고난도 무술 신을 소화하는 장면들은 액션 배우로서 할리우드를 공략해 볼 만한 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누가 봐도 혼신의 힘을 다했음이 명백한 그의 고난도 액션 연기 덕에 여전히 조금은 미숙한 영어 대사 처리나 감정 연기 등은 너그러이 넘어가 줄 법하다. 제임스 맥티그 감독은 액션 신마다 멋을 있는 대로 부렸다. 덕분에 날카로운 표창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귓불이 베어져 나갈 듯 오금이 저려오고 닌자들의 살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펄떡펄떡 솟는 피가 손에 묻는 듯 생생하다.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카메라 워크와 특수효과는 생동감을 넘어 멀미가 난다. 꽃잎이 흐드러지듯 불똥이 흩날리는 '오주누파'의 비밀 기지 속에서의 마지막 결투신은 차라리 아름답단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이 액션 신이 이어지다 보니 영화가 끝난 후엔 격한 피로감이 몰려들기도 한다. 다만 캐릭터의 감정과 행동에 조금의 설득력도 실어 주지 못하는 빈약한 스토리라인은 '닌자 어새신'의 치명적 약점이다. 첫사랑의 죽음은 주인공 라이조가 조직을 배반하고 무시무시한 복수를 꿈꿀만한 충분한 동기가 되지 못한다. 영화 중반부터 라이조와 운명 공동체가 되는 유로폴 요원 미카와의 관계 역시 이도 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사이에 멈춰 있다. 한마디로 '닌자 어새신'의 스토리는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보도록 만들어주는 동력에 단 1%도 기여하지 못했다. 때문에 비의 고군분투는 영화 속에서 더욱 빛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11-19

[영화 리뷰 - '2012'] 과연 지구의 종말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2012'가 영화팬들을 찾아 왔다. '인디펜던스 데이'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 등 스케일 큰 재난 영화 연출에서 빼어난 실력과 흥행력을 자랑해 온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이번 역시 2시간 30분간 스크린을 압도하는 영상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펼쳐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주연: 존 쿠색, 아만다 피트 장르: 어드벤처, SF, 드라마 등급: PG-13 이야기는 고대 마야 문명에서부터 끊임없이 회자되어 온 인류 멸망의 시기 2012년을 배경으로 한다. 각종 연구 끝에 실제로 2012년 멸망의 시기가 도래함을 감지한 과학자들은 비밀리에 이 사실을 각국 정부에 알리고 실제 전 세계에는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 한편 아이들과 함께 캠핑장을 찾은 소설가 잭슨 커티스(존 쿠색)는 호수가 메말라 있는 등 자연의 징후가 좋지 않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여행지에서 만난 괴짜 찰리는 잭슨에게 '인류는 곧 멸망할 것이고 정부는 이미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경고하지만 잭슨은 이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잭슨은 아이들과 예언에 기록된 것과 같이 무시무시한 멸망의 날을 경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에머리히 감독은 '2012'에 그동안 어떤 영화에서 사용한 것보다도 다양하고 화려한 특수효과를 사용했다고 강조한다. 무려 1300여 가지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동원된 영화 속에서 중국 대륙이 물에 잠기고 LA가 지진으로 갈라지는 등의 장면 장면은 관객들을 두려움에 몰아넣는 동시에 시각적 황홀함을 선사할 것이라고 제작진은 장담하고 있다. 지구의 멸망이란 극한의 상황 앞에서 진정한 영웅이 되는 사람은 결국 한 가정의 가장인 '아빠'라는 설정은 너무나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스토리 라인이자 에머리히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설정이다. 이번 역시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는 아빠 잭슨이 온 가족을 구원하는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재난 영화의 공포감을 상쇄시켜 줄 만한 가족적 가치의 강조란 또 하나의 축이 돼 영화를 지탱한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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